상대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두가지 아픈 기억
link  미세스약초   2021-05-07

'심층심리술'이라는 낯선 용어를 설명하기 전에, 이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내가 맛보았던 쓰라진 경험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우 다양한 체험을 한다. 기쁜 일과 슬픈 일 같은 체험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그 가운데는 아픈
기억으로 남는 체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쓰라린 기억이 두가지 있다.
그 하나는 중학교 시절의 기억이다. 친구 가운데 '터반'이란 별명을 가진 아이가 있었는데, 그는 머리숱이 볼품 사나울 정도로
적었다. 그래서 머리에 긴 천을 감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인도인과 비슷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를 터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성격이 밝은 그 아이는 자기의 머리카락 따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명랑하고 활달하게 지냈다.
그래서 우리도 별 생각없이 터반이라는 별명을 계속 불러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터반이 자살을 한 것이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친구들은 터반이 부모 앞으로 쓴 유서와 매일 써온 일기를 읽고 나서는 모두 엉엉 울고 말았다. 거기에는
평소에 밝게 지내던 모습과 달리 자기의 머리카락에 대한 아픈 열등감과 고뇌, 절망 등이 절절이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친구의 아픈 마음을 우리는 왜 알아차릴 수 없었을까? 친구로서 따뜻하고 충분한 이해를 못했던 것이 아닐까?
조금이라도 신경을 써주었더라면 그의 아픈 고민을 충분히 덜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그가 죽지도 않았을 텐데. 우리는 그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을 뼈저리게 뉘우쳤다.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또 하나의 기억은 어떤 암환자의 일이다. 그도 한때는 나와 매우 친하게 지낸 사람이었는데, 암이 퍼져
죽음을 선고받게 되었다.
어느날 나는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병문안을 하기 위해 그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갔다. 그는 내가 수술 후 처음 문안 온
사람이라면서 매우 반갑게 맞아 들였고, 우리는 재미있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다가 부인이 병실을 나가자 그는 갑자기
소리를 낮춰 나에게 속삭였다.

"사실 난 암일세. 수술은 했지만 너무 늦어 가망이 없다네. 앞으로 길어야 1-2개월 남은 것 같은데, 돌이켜보면 자네한데는
진짜 도움을 많이 받았어. 이제 마지막으로 뒷일을 부탁하네." 너무 자연스러울 정도로 담담한 말투였다. 부인한테는 그 사실을
내색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까지 하면서 자신의 병에 대해 이렇게 침착하게 말하는데야 어떻게 그의 유도심문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니 자네도 알고 있었나? 그러나 전혀 가망이 없지는 않을걸세. 어쨋든 뒷일일랑 걱정 말고 마음 편히 먹게나. 잘 치료하면
나을 수도 있을 테니."
나름대로 위로를 해주고 집으로 돌아온 직후였다. 그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거의 실성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글쎄 그 이야기를 하셨어요? 남편은 지금 충격을 받아 완전히 낙담해 있어요.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요!".

나는 그 전화를 받고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토록 담담한 말투가 연극이었다니! 그렇다고 해도 나 또한 얼나나 어리석었는가.
그가 지나치게 태연한 것이 아닌가 하고 한번쯤 의심을 품었어야 했다.
이 일이 그의 죽음을 얼마나 더 재촉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어쨋든 그는 이 사건 이후 3개월 정도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내가 얼마나 침통한 마음으로 장례식에 참석했는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타고 아키라의 마음을 훔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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